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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기독장로교회와 교단신학교

  • 작성자 사진: Nehemiah Tan
    Nehemiah Tan
  • 2019년 10월 3일
  • 4분 분량

대만기독장로교회와 교단신학교



들어가는 말

지난 호에서 필자는 대만에 있는 대표적인 복음주의 진영 신학교인 중화복음신학원과 성광신학원을 소개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대만의 본토교회이자 에규메니칼적인 경향이 강한 대만기독장로교회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교단신학교인 타이완신학원(또는 대만신학원), 타이난신학원(또는 대남신학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만기독장로교회 역사의 시작

대만의 대표적인 본토교회는 바로 대만기독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Taiwan, 이하 장로교회)이다. 장로교회는 두 개의 원류가 하나로 합쳐진 강물이다. 196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을 졸업한 의사 제임스 맥스웰(James Laidlaw Maxwell, 馬雅各)이 중국 샤먼(廈門)에 상륙하여 선교를 시작하였고, 대만에도 들러 대만 남부지역을 시찰하였다. 이듬해 그는 세 사람의 조수와 함께 대만에 상륙하였고 의료선교를 통해서 장로교회의 선교를 시작하였다. 제임스 맥스웰은 의료선교사였지 목사선교사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듬해인 1866년에 샤먼에서 사역 중인 윌리엄 스완슨(William Seanson)을 초청하여 대만인 네 명에게 세례와 성찬을 베풂으로써 실질적인 교회의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대만의 선교 사역은 인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초기에는 중남부에서만 진행이 되었다. 그러다가 1871년 캐나다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조지 맥케이(George L. Mackay, 馬偕)가 현재 가오슝(高雄)지역에 도착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쓴 사도 바울의 정신과 같이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기 위해서 대만 북부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금의 단수이(淡水)에 상륙하였고, 간단한 의료훈련을 받고 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발치(拔齒)를 포함한 진료를 해주고 필요한 약을 조제하여 나눠주는 일을 하였다. 그는 언어를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 목동에게 언어를 배웠는데, 언어에 재능이 있어 5개월 만에 지역 사투리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고, 대만에 도착한 뒤 3년 만에 사전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현지인 장총밍(張聰明)과 결혼을 하였고, 죽어서도 단수이에 매장되었기에 대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모범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가 1882년에 세운 옥스퍼드칼리지(Oxford College)는 이어서 소개할 대만신학원, 진리(眞理)대학교과 담강(淡江)중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장로교회는 서로 다른 두 교단의 선교부를 통해서 사역이 시작되었지만 이후에는 연합하여 하나의 총회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북부대회와 남부대회(대회는 총회와 노회 사이의 조직이다)로 나뉘었지만 남부대회는 이후에 해산되었고, 북부대회 또한 4개 노회의 연합모임의 형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 대만기독장로교회는 23개의 중회(中會, 한국의 ‘노회’개념)와 원주민의 참여를 돕기 위해 설립된 4개의 구회(區會, 노회 결성의 조건이 종족과 지리적 상황이 어려운 부족을 위한 조직)가 남아있고, 산하 교단신학원은 타이완신학원, 타이난신학원, 그리고 원주민 중심의 위산신학원(玉山神學院, 또는 옥산신학원)이 있고, 총회에 소속된 일반대학으로 진리대학교와 장영대학교가 있다.




타이완신학원

대만기독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Taiwan) 소속의 타이완신학원(Taiwan Theological College and Seminary, 臺灣神學院)은 대만 북부지역의 첫 선교사인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가 1872년부터 제자들과 함께 순회선교를 하면서 교육을 한 순회신학원을 그 기원으로 본다. 이후 본격적인 학교건립을 위해서 맥케이는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가 모금을 하였고, 캐나다 온타리오의 옥스퍼드지역 사람들이 후원한 것을 기념하여 1882년 옥스퍼드칼리지라는 이름의 학교를 짓게 되었다. 이 옥스퍼드칼리지에서 이후 성서와 신학분과가 따로 분립을 하게 되면서 독립적인 신학교육기관으로 성장하였고 기존에 있던 일반학문의 학교는 현재의 진리대학교가 되었다.

타이완신학원은 매우 긴 역사를 지닌 신학교로서 그 학제가 부단히 발전하고 변경되었으나 지금은 목회학석사, 신학석사, 문학석사(영성상담, 교회음악), 목회학박사, 신학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총 19인의 전임교수, 16명의 겸임교수가 재직 중이다.

타이완신학원의 특이점은 ‘타이완신학연구학원(Taiwan Graduate School of Theology)’이 함께 운영 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같은 신학원이지만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교육부의 인가 여부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난 호에 언급했듯이 대만의 신학원의 학력은 교육부로부터 인정이 되지 않았으나, 2004년 ‘사립학교법’의 수정으로 인하여 ‘종교연수학원’으로 교육부가 인정하는 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되어 타이완신학원은 2010년에 비로소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준비하였고, 2015년이 되어서야 정부의 인가를 받아 교육부 인가학위로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중 교육부 인가의 학위과정은 신설된 타이완신학연구학원으로, 교단인가 학위는 타이완신학원에 남겨두어 사실 같은 학교지만 두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타이완신학원은 대체적으로 학구적인 분위기이며, 타이난신학원에 비해 목회보다는 학문함에 더 중점을 두고 있으며, 대만기독장로교회 3개 교단신학교에서 상대적으로 통전적인 입장을 지닌 학교이다.




타이난신학원

타이난신학원(Tainan Theological College and Seminary, 臺南神學院)은 제임스 맥스웰이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고 1869년 타이난의 진료소에 있는 예배당에서 전도자속성반(傳道者速成班)을 세운 것과, 이후 타이난과 가오슝에서 세운 전교자양성반(傳敎者養成班)이 합쳐서 1876년에 병합하여 타이난대학교-신학교(臺南大學-神學校, 현재의 타이난대학교와는 다른 학교)를 이룬 것이 그 역사의 원류이다. 첫 교장으로는 토마스 바클레이(Rev. Dr. Thomas Barclay)가 취임하였고, 학생의 인원은 10여 명, 교수 3인, 교실과 숙소 각 한 동으로 시작하였다.

이 학교는 1913년 타이난신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제국주의 식민정부가 일본인 교장을 세우도록 한 명령을 불복종하기 위하여 학교를 폐교하였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투항을 하면서 1948년에 학교를 재건하게 되었고, 타이난신학원으로 명칭을 개정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학교의 특징으로는 대만어로 수업을 하고 대만어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학생들이 통역을 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철수하여 통치 시작한 이후 언어를 통일하고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북경어를 표준어로 강제로 사용하게 되었고, 원주민과 기존 대만어와 객가어(客家語)를 사용하는 지역적 특색이 많이 죽었지만, 타이난신학원은 이후 계엄의 시대가 지난 후 모어(母語)의 사용을 강조하여 정체성의 회복과 수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타이난신학원은 타이완신학원과 상대적으로 현장의 중요성을 보다 더 강조하며, 사회적 참여를 적극 격려한다. 수업과 나눔의 분위기도 학술적인 대화에 머무르기보다 현장에서의 실천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대만의 해방신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송천성(C. S. Song, 宋泉盛)이 이 학교의 원장을 지내기도 하였고, 국가와 사회를 향해서 신학적 입장과 신앙의 양심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타이난신학원은 타이완신학원과 같이 타이난신학원(교단인가)과 남신신학원(南神神學院, 교육부인가)이 함께 운영 중이다. 현재 전임교원 12인과 18인의 겸임교수가 봉직하고 있으며, 과정으로는 교단인가의 목회학박사, 목회학석사, 교육부인가의 문학석사(신학, 종교사회복지, 기독교음악)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타이난신학교는 장로교회의 신학교이지만 한국에서 교류를 하고 있는 학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감리교신학대학교라는 것이다. 비록 같은 대만기독장로교회의 신학교이지만, 타이완신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타이난신학원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한신대학교와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기타학교

대만기독장로교회는 이 외에 교단신학교로 위산신학원(옥산신학원, Yu Shan Theological College and Seminary)을 운영하고 있다. 위산신학원은 대만에서 유일하게 원주민을 위해서 설립된 학교이다. 1946년에 대만성서학원으로 설립되어서 1977년에 이르러 위산신학원으로 개명한 이 신학원은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강조하며 원주민을 위한 사역자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만기독장로교회 소속된 일반대학으로는 단수이의 진리대학교와 타이난의 장영(長榮)대학교가 있다. 장영대학교에도 사실 신학전공이 있지만 목회자 양성기관으로서의 신학원은 아니고, 일반대학으로서 학술연구를 위한 신학석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장영대학교는 한국의 한신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와 교류하고 있다.


나가는 말

이번 호에서는 대만의 대표적인 본토교단이자 에큐메니칼 교단인 대만기독장로교회가 시작된 역사와 그 교단신학교 중 한국 독자들이 보다 관심을 갖을 수 있고 또한 교육부 인가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타이완신학원과 타이난신학원을 주로 소개하였고, 원주민을 위한 위산신학원과 일반대학인 진리대학교와 장영대학교를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사진 | 대만기독장로교회로고는 해당 총회 홈페이지에서, 타이완신학원 사진은 타이완신학원, 타이난 신학원 사진은 타이난신학원 홈페이지 받았습니다. 담느헤미야 | 인창제일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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