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03-쪼잔해 보이는 대만문화
- Nehemiah Tan
- 2019년 5월 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19년 5월 9일
쪼잔해 보이는 대만문화
들어가는 말
필자의 선친께서는 오랜 시간 서울 소재 한성화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한국어 과목을 가르치셨고 교재를 편찬하셨다. 한성화교중학교의 고등부는 ‘한국대학진학반’이 있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학교 교재도 함께 사용하여 가르치는데, 필자의 기억으로 선친께서 특히 신경을 써서 지도하셨던 영역이 바로 ‘논술’과 ‘자기소개서’였다.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논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장점은 잘 살려서 설명하고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해야 하고, 단점은 단점으로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지난 호에서 ‘대만교회는 예의가 없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장점 혹은 단점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말과 글, 즉 언어가 관계와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수적이며, 교류하는 관계에서는 적극적인 수용과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의 글의 제목과 내용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선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쪼잔하게 느낀 영수증 처리 방법
대만교회를 출석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교회 예산을 사용하여 물품을 구매할 일이 있었는데, 한국에서와 같이 물건을 사비로 구입하고 영수증을 받아서 회계 담당자에게 넘겨주고 돈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자 회계가 돈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영수증에 ‘統一編號’(통일 일련번호)를 기입하지 않아서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이 뭔지도 몰랐단 필자는 일련번호를 손으로 적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었다.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만의 영수증 체계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대만의 영수증은 ‘統一發票’(통일 영수증)라고 한다. 이 체계는 1950년에 구상되고 1951년에 실행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온 체계인데, 국가가 지정한 특정 인쇄소에서만 만들어내는 영수증을 사용하게 되었다. 정부는 이런 통합된 영수증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당시 불투명했던 현금거래를 기록에 남도록 영수증 사용을 의무화하였고, 소득을 투명하게 하여 세수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제도이든지 정착을 하도록 장려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국가는 통일 영수증마다 서로 다른 일련번호를 갖게 하여 이 번호가 영수증 고유번호인 동시에 당첨이 되는 복권의 일련번호 역할을 하도록 했다.
1, 2월의 영수증을 잘 모아두면, 그다음 홀수 달 25일에 그 일련번호를 가지고 공지된 번호와 숫자를 맞춰 가장 마지막 3개의 숫자와 동일하면 200NTD(약 7천 원)를 얻게 된다. 공지된 일련번호와 동일한 1등은 20만NTD(약 7백여만 원)를, 특상은 200만NTD(약 7천여만 원)를 받게 되고, 2011년부터는 그 위에 특별상을 신설하여 1000NTD(약 3억 6천만 원)를 받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통일 일련번호는 8자리의 숫자인데, 합법적으로 등기된 회사는 회계사를 통해서 국가에 통일 일련번호를 신청하여 부여받는다. 그리고 물품을 구매하여 영수증을 발급받을 때, 일련번호를 점원에게 알려주면 점원이 통일 영수증을 발급할 때 영수증 안에 그 번호를 입력하여, 그것을 근거로 세금의 일정 부분 감면을 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공금을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이 되기에 회사에 청구하여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사업자등록번호를 통한 지출증빙을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이 제도의 좋은 점 하나는, 영수증이 복권이기에 사람들이 잘 모아두며, 나중에 한꺼번에 재활용하기에 쓰레기 재활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필자가 왜 돈을 끝내 받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온다. 대만교회(또는 교단)는 이전의 한국교회와 달리 대체적으로 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있기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세무의 투명성과 세금 감면을 위해서 통일 일련번호를 영수증에 기재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비록 대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나, 한국에서의 관례들에 익숙하기에 이토록 철저하고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통해, 아마도 돈을 못 받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쪼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세무는 회사, 단체, 교회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비록 복잡하게 느껴지고 쪼잔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잘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 돈을 쓰고 못 받는 일이 없게 하는 방법이다.
잠깐 삼천포로 빠진다면, 대만의 재밌는 기부문화는 바로 ‘영수증 기부’이다. 교회나 단체에 투명한 상자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개인이 물품을 구입한 영수증을 기부하는 것으로서, 불확실한 미래의 행운을 교회나 단체에 맡겨, 당첨되면 그 상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건만 사면 자연적으로 복권이 나오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과연 복권을 구매해도 되는지의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 복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상황이 신앙생활의 질문을 바꾼 한 예다.

더치페이 문화와 ‘니꺼’ ‘내꺼’
이 외에 쪼잔함을 또 느끼게 되는 것은 더치페이 문화이다. 대만은 화폐단위가 작기에 정말 1원까지도 따지면서 더치페이를 한다. 같이 한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은 다음에 계산하게 되면 지폐와 동전을 꺼내서 결제할 준비를 하고, 같이 주문한 것이 있으면 n분의 1을 하여 정확하게 계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에서는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식사를 대접하거나 밥을 먹자고 한 사람이 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만은 비록 같이 밥 먹자고 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명확하게 대접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면 각자 계산을 하게 된다. ‘같이 밥 먹는 것’과 ‘내가 대접할게’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좋은 점도 있다. 누가 밥을 사면 눈치를 보느라 정작 먹고 싶은 것을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더치페이는 각자 알아서 먹고 싶은 메뉴를 자유롭게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그만큼 소유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끼리도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다 쓰는 법이 없다. 비록 친한 사람들끼리는 물품을 어렵지 않게 주고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언급 없이 사용하는 것은 침범으로 느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작은 공유와 나눔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대만의 대접문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면 쪼잔함에 대한 부각이 더 클 것 같아서 대만의 대접문화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我請你”(내가 대접할게)는 대만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대만에서 대접하는 것은 매우 작은 것부터 시작될 수 있다. 큰 액수의 관대한 나눔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정말 사소하거나 생각지 못한 것까지 대접의 영역에 속할 수 있다. 일례로 필자의 친구는 샴푸마사지(원래는 ‘洗髮’로 ‘머리감기’만을 뜻하는 단어이다)를 대접받은 적도 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헤어커트에 샴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메뉴에서 샴푸마사지는 따로 항목이 있기에 커트를 하지 않아도 샴푸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대접의 영역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개념은 ‘내’가 ‘대접’한다는 것이다.
대만의 문화는 개개인의 독립성과 그 생각과 소유를 명확하게 인식한다. 그렇기에 사소한 것이라도 그 소유권이 주장 되지만, 이는 동시에 그 사소한 것까지 대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대한 나눔과 대접도 물론 존재하지만, 필자가 이런 사소한 대접을 언급하는 것은 비록 매우 작은 것이지만 그 작은 것 또한 베풂과 감사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대만에서는 회의를 자주 한다. 회의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회의가 많다’는 민원이 있으면 회의를 통해 처리방법을 찾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회의에서는 정말 세세한 것까지 다루면서 그 책임자를 세분한다. 그리고 각자 맡은 영역을 잘 침범하지 않고 터치를 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 세부 항목을 맡은 사람이 책임을 진다.
어떤 면에서 볼 때 한국과 대만은 스케일의 면에서 차이가 있게 보인다. 한국은 대체적으로 큼지막하게 진행이 되며 스케일이 상대적으로 커 보일 때가 많다. 상대적으로 대만은 쪼잔해 보일 수는 있으나, 때로는 바로 그런 사소한 것까지 세세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통해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대만과 교류와 협력을 할 때, 때로는 이런 문화의 차이로 답답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바로 그런 문화로 인해 세세하고 작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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